.이것이 바로 온누리교회 교회론과 목회철학의 기준이다!……
우리가 꿈꾸고 우리가 바라고 우리가 이루어 가야 하는
[ 사도행전적 교회의 열 가지 특징! ]
1_ 사도행전적 교회는 성령 사역하는 교회이다.
2_ 사도행전적 교회는 서로 통용해서 예수 공동체를 이루는 교회이다.
3_ 사도행전적 교회는 기적이 일어나는 교회이다.
4_ 사도행전적 교회는 고난 속에서도 복음을 전하는 교회이다.
5_ 사도행전적 교회는 재물을 나누는 교회이다.
6_ 사도행전적 교회는 거룩하고 성결한 교회이다.
7_ 사도행전적 교회는 영적 리더를 세우는 교회이다.
8_ 사도행전적 교회는 이방인을 품는 교회이다.
9_ 사도행전적 교회는 선교하는 교회이다.
10_ 사도행전적 교회는 사도행전 29장을 계속 써 가는 교회이다.
* 교회론과 목회철학이 잘 세워지면 예배가 살아난다
교회론과 목회철학에서 가장 중요한 것이 예배다.
예배는 흥분이다. 감동이다. 눈물이다. 심장이 뛰는 것이다. 하나님의 영광을 보는 것이다.
성령님의 기름 부으심을 경험하는 것이다. 성령님의 능력 안으로 들어가는 것이다.
귀신이 떠나가고, 은사가 나타나고, 치유와 예언이 나타나고, 방언이 터지는 것이다.
온몸의 세포가 다 살아나서 하나님을 찬양하고, 하늘을 향해 외치는 것이다.
예배는 마치 사랑하는 사람을 만나러 갈 때처럼 흥분되는 것이다.
예배드리다가 하나님의 영광을 보고, 더 이상 말을 못하고 기절해야 하는 것이다.
기적과 치유가 있는 예배! 귀신이 떠나가는 예배! 그런 예배가 우리들 가운데 회복되어야 한다.
* 교회는 영원하다
교회는 사라지지 않는다. 교회는 불멸한다. 세상에는 있다가 없어지는 것이 너무 많다.
그래서 교회도 있다가 없어지는 것이라고 생각하는 사람들이 있다. ‘
과연 교회는 영원한가?’그렇다. 교회는 영원하다. 세상은 변해도 교회는 멸망하지 않는다. 구원이 변치 않는 것처럼 교회는 영원하다.
이 사실에 대한 확신이 있어야 한다. 현대는 하루가 다르게 급변하고 있다. 자고 일어나면 세상은 너무나 다르게 변해 있다.
거대한 죄악의 물결, 세상의 물결, 이 변화하는 물결 속에서 한 개인은 때로는 너무나 의미 없고 무참한 존재로 느껴진다.
이러한 디지털 세상 속에서 그리스도인이 정신 차리고 살지 않으면 존재의 이유를 잃어버리기 쉽다.
그러면 우리의 존재를 지킬 수 있는 유일한 근거가 무엇인가? 그것은 바로 교회다.
교회가 살면 세상이 살고, 교회가 살면 세상이 구원받을 수 있다. 그래서 그리스도인은 교회에 집중해야 한다.
* 사도행전적 교회를 꿈꾸다
‘사도행전적 교회’는 내가 23년 동안 변함없이, 끊임없이 생각한 주제이다.
예수님이 의도하시고 사도행전에서 보여 주신 바로 그 교회는 어떤 교회인가?
오늘날, 교회가 많아도 세상은 안 변한다. 신학교가 많고 목사가 많아도 세상은 변하지 않는다. 이런 현실 앞에 우리가 직면해 있다.
‘우리가 섬기고 있는 것이 정말 교회일까? 우리들이 보고 있는 교회가 주님이 원하시는 바로 그 교회일까?’
다르게 말하면, ‘교회가 무엇인가?’하는 것이다. 그러한 고민 속에서 나는 교단, 교파, 목사라는 껍질을 다 벗기 시작했다.
‘주님이 의도하시고 사도행전에서 보여 주셨던 진짜 그 교회의 생명력은 무엇인가? 교회를 교회 되게 했던 그것이 무엇인가?’
이 생각을 23년 동안 해 온 게 온누리교회다.
바로 그 교회! 예수님이 의도하시고 사도행전에서 보여 주셨던 바로 그 교회! 사도행전적 교회!
이것이 바로 나의 비전이고, 온누리교회의 비전이다.
* Acts29
비전이 중요하다. 개꿈 말고, 망상 말고, 허황된 야망 말고 정말 예수님을 위한 꿈, 예수님이 주신 꿈 말이다.
그 꿈 때문에 잠을 못 자고, 그 꿈 때문에 흥분되는 것 말이다.
십 년을 생각하는 사람과 백 년을 생각하는 사람은 말도 다르고 걸음걸이도 다르다.
잠을 못 이룰 만큼, 밥을 못 먹을 만큼, 죽어도 해야 하는 그런 환상, 그런 꿈, 그런 정열, 바로 그것이 비전이다.
어떠한 환난이나 곤고나 핍박이나 기근이나 적신이나 위험이나 칼이라 할지라도 그리스도 안에 있는 사랑을 막을 수 없는 것처럼(롬 8:35),
비전은 막을 수 없다.
사람은 자기가 가진 비전만큼 간다. 하나님이 주신 꿈만큼 간다.
2000년 전 오순절에 120명에게 성령과 바람과 불이 임했을 때, 그들은 방에 가만히 앉아 있을 수 없었다. 그들은 밖으로 뛰쳐나갔다.
이처럼 하나님의 비전을 품은 사람은 고생도 무섭지 않다. 고통도 무섭지 않다. 병도 무섭지 않다. 돈 없는 것도 무섭지 않다.
비전이 없는 사람은 불행한 사람이다. 비전이 없는 사람은 동물과 같다. 동물은 꿈을 갖지 않는다.
그러나 하나님을 만난 사람에게는 새 하늘과 새 땅과 예수님을 전하고 싶은 강렬한 열망이 있다.
예수님의 비전은 하나님 나라를 이 땅에 이루어 드리는 것이다.
그렇다. 교회를 세우는 것이다. 예수님은 “여우도 굴이 있고 공중의 새도 거처가 있으되 오직 인자는 머리 둘 곳이 없다”(마 8:20)고 말씀하셨다.
예수님은 결혼할 틈이 없었다. 예수님은 학교 다닐 틈도 없었다. 예수님은 삼 년 동안 피곤에 지치도록 일하시며, 누구든지 다 만나 주셨다.
예수님의 꿈은 십자가에서 죽는 거였다. “나는 고통 없이 죽고 싶다.”는 소리를 해서는 안 된다.
고통스럽게 죽으면 어떤가? 꼭 곱게 죽어야만 하는가? 곱게 죽으면 다행이고, 곱게 안 죽어도 상관없다.
예수님만 기뻐하실 수 있다면, 하나님만 기뻐하실 수 있다면! 그 예수님은 “너희는 가서 모든 족속으로 제자를 삼으라”(마 28:19)고 말씀하셨다.
이 명령을 따라서 우리 교회의 비전은 사도행전 29장을 계속 써 나가는 것이다.
사도행전은 아직 끝나지 않았다.
주님의 명령을 따라서 모든 족속에게 복음을 전하는 사도행전은 지금도 계속되고 있다.
Acts29! 이것이 온누리교회의 존재 목적이며, 포기할 수 없는 비전이다.
– 본문중에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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