저는 하나님을 향한 이 강력한 갈망을 의도적으로 북돋우고 싶습니다. 그 갈망이 없기 때문에 지금처럼 우리가 저지대에 머물러 있는 것입니다. 그 거룩한 열망이 없기 때문에 지금처럼 우리의 신앙생활이 뻣뻣하고 경직된 것입니다. 자기만족은 모든 영적 성장에 치명적인 적입니다. 간절한 열망이 있어야 합니다. 그 열망이 없으면 그리스도가 백성 앞에 나타나지 않으십니다. 그리스도는 우리가 자신을 소원하길 기다리십니다. 그리스도의 오랜 기다림, 그토록 오랜 기다림이 무색하도록 아직까지도 많은 이들이 그를 갈망하지 않는 것은 너무나 안타까운 일입니다. (중략) 이러한 종교의 외적 형식들 사이에서 하나님을 발견하려면, 그를 발견해야겠다는 결심부터 해야 합니다. 그리고 단순한 길로 나아가야 합니다. 항상 그렇듯이, 하나님은 “지혜롭고 슬기 있는 자들” 앞에서는 캄캄한 어둠 속에 숨으시고 “어린아이들”에게는 자신을 나타내십니다(마 11:25). 하나님께 나아갈 때는 단순하게 나아가야 합니다. 꼭 필요한 것만 남기고(다행히도 꼭 필요한 것은 아주 적습니다) 나머지는 다 버려야 합니다. 사람들에게 잘 보이려는 노력을 포기하고 아이처럼 꾸밈없이 솔직하게 나아가야 합니다. 그러면 속히 응답하실 것이 확실합니다.
—「1장. 하나님을 가까이 따르라」중에서
예수께서 그 몸을 찢으심으로 휘장을 제하셨고 하나님 편에서 우리가 나아가지 못하도록 막는 것이 하나도 없는데, 왜 우리는 밖에서 지체하는 것일까요? 왜 평생 지성소 밖에 머무는 데 동의하며 안으로 들어가 하나님을 보려 하지 않는 것일까요? (중략) 단지 “냉랭하기 때문”이라는 평범한 대답으로는 모든 상황을 설명할 수 없습니다. 냉랭한 마음보다 더 심각한 문제, 그 냉랭함의 원인이 되는 문제가 있습니다. 그것이 무엇입니까? 우리에게 마음의 휘장이 있다는 것 아닙니까? 첫 휘장과 달리 여전히 그 자리에 남아 빛을 막고 하나님의 얼굴을 가리는 휘장이 있다는 것 아닙니까? 그 휘장은 우리 안에 있는 심판받지 않은 본성, 십자가에 못 박히거나 거부당한 적 없이 여전히 살아 있는 육신의 타락한 본성입니다. 한 번도 진심으로 인정해 본 적 없는 자기 목숨, 속으로 부끄럽게 여겨 온 자기 목숨, 그래서 한 번도 십자가 심판의 자리로 가져가 본 적 없는 자기 목숨이야말로 촘촘히 짜인 마음의 휘장입니다. (중략) 자아는 하나님의 얼굴을 가리는 불투명한 휘장입니다. 이 휘장은 영적인 경험으로만 제거될 뿐, 단순한 가르침으로는 제거되지 않습니다. 가르침으로 이 휘장을 제거하려 드느니 차라리 나병을 가르쳐 우리 몸에서 떠나게 하는 편이 더 나을 것입니다. 자아에서 해방되려면 자아를 멸하시는 하나님의 역사가 먼저 있어야 합니다. 십자가를 초청하여 우리 안에서 자아를 죽이게 해야 합니다. 십자가 심판의 자리로 자아의 죄를 가져가야 합니다. 구주께서 본디오 빌라도에게 고난을 받을 때 겪으신 고통과 어느 정도 비슷한 고통의 시련이 닥칠 것을 각오해야 합니다.
—「3장. 휘장을 제하라」중에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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