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세례 요한’은 신약성경의 주인공인 ‘예수’가 등장하기 바로 전, 그의 도래를 예비하던 인물이었다. 그는 평생 광야에서 홀로 지내며 하나님과 대면했으며, 악습에 얽매인 바리새인을 신랄하게 비판하면서 “때가 가까웠음”을 외쳤다. 하지만 정작 예수가 역사의 전면에 등장하자 홀연 헤롯의 손에 죽음을 당한 채 역사의 뒤안길로 사라지고 만다. 마치 어느 한 사람을 위해 정성껏 차려졌다가 황급히 ‘처리’된 밥상처럼. 도대체 그가 광야에서 단련하던 그 많은 시간과 노력은 무슨 의미가 있었던 것일까? 그의 억울해 보이는 죽음 또한 하나님의 섭리 안에 있었던 것일까? 하나님은 과연 공평하신가? 이 책은 ‘세례 요한’을 통해 우리가 마음에 품고 있으나 차마 대놓고 묻지 못하던 이런 질문에 답을 준다.
이 책은 크게 두 가지 사건을 대비하고 있다. 감옥에 갇혀서 의문을 품은 채 자신의 죽음을 기다리는 세례 요한. 비슷한 시기에 이 마을 저 마을 병든 자와 귀신 들린 자를 고쳐주며 이적을 행하던 예수. 세례 요한의 제자들은 예수에게 찾아와 묻는다. “오실 그이가 당신입니까? 그렇지 않으면 다른 이를 기다려야 합니까?” 예수는 대답한다. “요한에게 돌아가서 이렇게 전하라. 소경이 보며 앉은뱅이가 걸으며 문둥이가 깨끗함을 받으며 귀머거리가 들으며 죽은 자가 살아나며 가난한 자에게 복음이 전파된다 하라. 누구든지 나를 인하여 실족하지 아니하는 자는 복이 있도다.” 그리고는 아직까지도 자신의 고침을 간절히 기다리던 많은 무리를 민망히 바라보다가, 그 마을을 떠나 다른 마을로 이동한다.
제자들은 그의 선생인 요한에게 달려와 예수의 메시지를 전한다. 그들이 보고 들은 바를 들려준다. “마을의 큰 거리나 샛길, 골목 골목마다 고침 받기를 기다리는 사람들로 북새통을 이루고 있었습니다. 많은 이들이 고침을 받고 기뻐했지요.” 이때, 갑자기 요한의 눈이 반짝이는가 싶더니 제자들에게 되묻는다. “많은 이들이라고 했느냐?” “네, 선생님, 많은 이들이요.” “그래? 많은 이들이지? 그렇지? 모두가 고침을 받은 것은 아니었지?” “네. 그리고 또 이렇게 전하라고 했습니다. “누구든지 나를 인하여 실족하지 아니하는 자는 복이 있도다.”
요한은 마침내 질문에 대한 답을 찾은 듯 했다. 그 시각, 먼 곳에서부터 예수의 소문을 듣고 병든 아이를 안고 찾아온 여인은 갑자기 마을을 떠나버린 예수 때문에 눈물을 삼키며 다시 고향집으로 돌아가고 있었다. 많은 이들이 고침을 받았으나 … 모두가 고침을 받을 수 있는 건 아니었다. 그리고 그건 예수가 이 땅에 온 이유도 아니었다. 육신의 병을 고침으로, 또는 누군가에게 일용할 양식을 제공하는 것으로 이 땅에 영원한 안식과 평화를 가져다 줄 수 있었다면, 그는 결코 십자가에 매달려 죽지 않았을 터였다. 예수는 이미 알았던 것이 아닐까. 이 땅에서 ‘영원한 평화’란 애초에 존재하지 않는 것이었음을. 우리의 인생에 ‘영원’이 없듯이 말이다. 플롯이 조금 헐겁고 단순해 보이지만, 깊은 메아리를 주는 책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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